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랍의 봄 (문단 편집) === 왜 완성될 수 없었는가? === 냉전시대부터 지속된 [[미국]]의 이른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수출 전략"에서 볼 수 있듯 미국과 그 동맹국으로 이루어진 [[제1세계]] 나라들의 정치인과 국민들은 '''독재 정권만 몰아내면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정착되고, 인권 수준도 자연스럽게 향상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믿음은 [[한국]]이나 [[동유럽]]의 독재 붕괴 후 민주화 양상을 목격하면서 더욱 공고해졌으며, [[새뮤얼 헌팅턴]] 등은 미래에는 전 세계가 민주주의라는 단일 패러다임으로 수렴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제3의 [[민주화]] 물결") 그렇기에 아랍 민주화 초기에 [[위키리크스]]나 [[트위터]] 같은 매체는 아랍에서도 자신들과 같은 정치체제가 성립될 것이라고 믿으며 아랍권의 민중들에게 동기와 힘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주의가 자생하기 위해서는 ①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열망 ②사회 경제적 수준과 인프라가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했다. 중동 지역은 그 두가지가 모두 부족했으며, 그 때문에 외부에서 억지로 민주주의를 이식하려 해도 부작용만 일어난 것이다. 일단 첫째로 서구인들은 중동에서는 민주주의 같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망은 부족하고, 그것보다는 종교와 종파, 부족주의가 더 우선시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서구권의 시선은 [[정교분리]]가 당연한 사회에서 바라본 일종의 착각이었던 셈이다. [[종교개혁]]과 시민혁명 등을 거치며 종교의 영향력이 많이 약해진 서구권과 달리 아랍권은 그러한 역사적 사건을 겪지 못했기에, [[이슬람교]]가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당연히 유럽의 종교 개혁 이전의 수준에 필적한다 보아야 한다. 기존의 독재자들은 이러한 이슬람교의 정치 참여를 (자신의 독재를 위해서라는 이유라지만) 어찌됐건 틀어막고 [[세속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퇴출되자 이슬람교의 정치 참여가 드디어 허용되었으며, 그것이 한국/동유럽과 아랍의 결정적인 차이를 불러왔다. "아랍권 민주화 운동"이라는 국제적인 명칭도 [[제1세계]]의 희망회로를 잘 보여주는 기만적인 이름으로, '''사실 시위의 가장 큰 목적은 [[민주주의]] 실현이 아니라 민생 문제 해결이었다.''' 물론 [[튀니지]]나 [[이집트]] 같이 민주화를 부르짖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위대가 민생을 최우선으로 내걸었고, 이는 튀니지나 이집트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시위를 일으킨 민중들의 관심사도 정권교체와 부패척결 등 현실적인 것들에만 치중되었고, 종교과 충돌점이 있는 [[인권]], 제도적 민주주의, 정교분리 등등의 의제는 끝내 대중의 관심사를 차지하지 못했다. 서구권의 시각은 이 부분에서 특히 나이브하였는데, 아랍의 민중들이 민생의 해결을 위해서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요구할 것이고 정교 분리도 알아서 주장하고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논리의 흐름을 좋을대로 믿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현실은 믿음과는 달라서 [[시리아 내전]]의 반군 주요세력을 보면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온건파와 [[샤리아]]를 주장하는 원리주의자들이 섞여있다.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의 준동을 목도하고 난 뒤에는 마냥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주의 세력 중 일부랍시고 지지해주기도 뭣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이런 복잡한 관계로 인해 서방세계는 [[시리아 내전]]에 거의 개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예 아사드의 재집권이 낫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 아사드가 비록 독재자였을지언정 오사마 빈라덴이나 IS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광신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사드 같은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독재자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광신도를 탄압해 왔다. 둘째로 중동지역은 사회경제적 인프라와 안정도 부족했다. 그런 저개발 상황에서 혁명 등의 거대한 체제 변화가 일어나면 그나마 체계가 잡혀 있는 집단에게 권력의 기회가 오기 마련인데, 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종교 집단과 군부이다.[* 이는 중세 유럽 [[암흑시대]]의 가톨릭 조직이나. 일본의 [[센고쿠시대]] 등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서구인들이 민주화의 우등생으로 꼽는 한국마저 [[4.19 혁명]]이 일어난 뒤에도 군부 독재 체제가 장기간 유지되었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사회 인프라 구축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